[과학] 완벽한 시야를 제공한 르네상스

2024. 4. 5. 20:50과학/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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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베네치아는 이미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지나고 있었다. 또한, 지중해 무역으로 전성기에 3천 개를 넘었던 베네치아 해운업체도 「대항해 시대」를 맞아 해운의 무대가 대서양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만튀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자 사람과 문물이 전쟁을 피해 에게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흘러들어 새로운 문예 부흥의 기운이 고조되었다. 한편, 튀르크 제국을 피해 아시아로 가는 항로가 필요했고, 이것이 「신대륙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발견’에서 경제의 중심은 이탈리아에서 북유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여전히 문화 중심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면서 점차 유리 공예가 활발해졌다. 원래 베네치아인은 서기 1200년대 아름답고 투명한 유리의 원료가 되는 소다회를 중동에서 가져왔고, 베네치아 북쪽에 있는 무라노(Murano)섬은 유리공예로 이미 유명하였다. 이 섬의 유리 장인은 기술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섬 밖으로 나가는 게 금지되었을 정도였다. 1609년 가을에 갈릴레오의 망원경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모두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 말에 그는 20배율 망원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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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주요 항해 지도

 

갈릴레오는 스스로 만든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달을 관측하는 것을 시작했다. 이때 여덟 개 표정의 달을 그린 스케치는 충격적이었다. 울퉁불퉁한 산, 거기에 들쭉날쭉한 바깥 둘레와 그림자의 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것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이어 다른 행성도 관측하였다. 1610년 1월 목성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열로 된 세 개의 작은 별을 발견했다. 3일 후 그중 하나가 사라졌다. 다시 3일 후 사라진 별이 나타났다. 그리고 네 번째도 찾아냈다. 이 별은 어쩌면 목성을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이것이 바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순간이다. 이때 갈릴레오는 이미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단념하고 있었지만, 간접적으로 그 결론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목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위성이 존재한다면, 지구도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이 발견을 책으로 출판했다. 짧고, 읽기 쉽게 쓰고 싶어서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를 사용하였고, 몇 장의 그림도 실었다. 이 책은 《별의 보고》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또한, 갈릴레오는 이 책을 코시모 데 메디치 대공에게 바치고, 발견된 목성의 네 개 위성의 이름을 메디치 가문 네 명의 형제 이름으로 명명하자고 제안했다. 이 작전은 정말 성공이었다. 1610년 여름, 갈릴레오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궁정 수학자 겸 철학자로 임명되었다. 월급도 대폭 올랐고, 미래도 안정되었다.

 

 

[과학] 갈릴레오와 종교재판

교회와 충돌, 이단 재판, 투옥 등 갈릴레오가 말년에 겪었던 사건은 과학사의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 결코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이단’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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