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코 브라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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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가난한 천재 수학자, 케플러
점점 더 독재적이고 거만해진 튀코 브라헤는 베인 섬을 자기 땅처럼 관리하였고, 나쁜 짓을 저지른 섬 주민을 마음대로 감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국왕과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1597년에 덴마크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2년 정도 독일을 여행한 뒤 측근과 함께 프라하로 건너가 그곳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를 알현했다. 그때, 체코에서 황실 수학자의 취임을 요청받는다. 이를 받아들인 브라헤는 프라하에서 35km 정도 떨어진 성에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관측을 시작했다. 그곳에 보조로 초대한 사람이 바로 별로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브라헤와 반대로 케플러는 157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16세기 유럽은 전..
2024.04.05 -
[과학] 고대 우주관의 불완전성을 알아 낸 튀코 브라헤
1085년 스페인의 톨레도 함락 때 아라비아인이 얼마나 다양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었는지 밝혀졌다. 이 전투는 지중해를 건너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오랜 전쟁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이 도시가 기독교인의 손에 넘어가자, 그곳에는 수많은 도서관이 있었고, 방대한 장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중에는 당시 기독교 유럽 사회는 이미 잊어버린 고대 그리스 고전의 아랍어 번역본도 있었다. 그중 최고는 바로 《알마게스트》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2세기에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파가 주장하는 천구 개념과 행성이나 별의 운동을 실제 관측한 결과 사이에 생긴 차이를 조정하려고 노력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당시 로마제국의 일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었다...
202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