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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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루터의 95개 조항
종교개혁은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도사로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이기도 한 마르틴 루터가 시작하였고, 루터와 북유럽 국가의 사람은 가톨릭교회의 타락에 대한 비판을 점점 강화했다. 그들이 특히 문제 삼은 것은 면죄부의 판매였다. 면죄부란 속죄의 면제 또는 경감을 인정한 증서이다. 16세기가 되자 그것은 장사의 대상이 되었고, ‘면죄부 판매’도 나타났으며, 속죄의 경감이나 연옥에서 유예되거나, 지옥에서 해방되는 것을 약속한 증서를 상당한 대가를 받고 팔았다. 특히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수리하려고 면죄부 발행을 더 늘렸다. 이것은 아마 루터가 행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1517년 그는 유명한 95개 조항의 논제인 《면죄부의 의의와 효과에 관한 견해..
2024.04.05 -
[과학]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만남
그때까지는 별개였던 세 개의 흐름이 프라하에서 합류하여 큰 강이 되었다. 그 계기를 만든 것은 종교개혁과 왕궁의 존재였다. 인쇄 기술의 발명과 관측 장비의 발전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거대한 흐름은 우리가 대대로 물려받은 고전적인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거대한 흐름의 실제 참여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우주관을 근본으로부터 뒤엎는 일이었다. 이제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준비되기 시작했다.1600년 2월, 케플러는 《천체의 회전에 대해》와 기하학적 우주관을 완성하려는 뜻을 가지고 프라하에 왔다. 베인 섬의 성주 브라헤는 점점 혼자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행동하게 되었고, 새로운 조수인 케플러..
2024.04.05 -
[과학] 우주의 신비를 쓴 케플러
요하네스 케플러가 태양 중심의 우주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순수한 학문적 이유 외에 신비주의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수한 수학자이자 점성술사였다. 당시에는 이 두 직업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고, 그 무렵의 점성술은 매우 중요한 직업이었다. 루돌프 2세 등 당시의 지도자는 태양이 가져오는 낮과 밤, 달의 모양이 변하는 시간, 계절의 변화 등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른 행성이나 별도 운명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점성술은 당시에는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었다. 그런데 점성술에는 행성 운행의 치밀한 계산과 미래 위치의 정확한 예측이 필요하다. 튀빙겐 대학을 졸업한 케플러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수학 교수로 일했다. 그러나 월급은 너무 적었고, 수학 지식을..
2024.04.05 -
[과학] 가난한 천재 수학자, 케플러
점점 더 독재적이고 거만해진 튀코 브라헤는 베인 섬을 자기 땅처럼 관리하였고, 나쁜 짓을 저지른 섬 주민을 마음대로 감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국왕과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1597년에 덴마크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2년 정도 독일을 여행한 뒤 측근과 함께 프라하로 건너가 그곳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를 알현했다. 그때, 체코에서 황실 수학자의 취임을 요청받는다. 이를 받아들인 브라헤는 프라하에서 35km 정도 떨어진 성에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관측을 시작했다. 그곳에 보조로 초대한 사람이 바로 별로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브라헤와 반대로 케플러는 157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16세기 유럽은 전..
2024.04.05 -
[과학] 고대 문명의 우주관, 천동설
고대 문명의 초기 우주관은 모두 똑같았다. 그것은 바로 지구가 중심에 있다는 《천동설》이었다. 수메르인, 바빌로니아인, 이집트인의 세계는 태양, 달, 별, 행성이 모두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문명에 따라 다르지만, 유럽인의 사고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그리스인 철학자가 확립한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그들을 ‘고대 그리스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존재했고, 그들의 우주관은 6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후세에 전달되었다. 천구 또는 반구에 고정된 별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는 당시 지구는 납작한 원반 모양, 또는 와인의 코르크 뚜껑처럼 윗부분이 납작한 원통 모..
2024.03.31 -
[과학] 과학의 요람, 프라하성
16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변혁의 기세는 무시무시하고 피비린내 나는 것이었다. 타락한 로마 교회에 대한 항거로 1517년에 시작된 종교개혁은 유럽의 신생 국가를 1세기에 걸쳐 혼란에 빠뜨렸다. 이 소란으로 그때까지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한 가지 생각이 흔들렸다. 그것은 바로 지구가 모든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때까지 대부분 우리가 사는 변함없는 대지, 이 지구가 하늘을 움직이고, 별과 행성, 그리고 생명과 빛을 가져다주는 태양과 달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만물은 모두 신이 우리 인간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이 해석이 교황에 의한 것이든, 루터교와 같은 《성경》 해석을 통한 것이든, 교회와 국가는 이 논리에 권위와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16세기가 끝나가자, 혼란..
2024.03.29